중국의 품으로 돌아간 홍콩 그리고 일국양제
1997년 7월 1일 홍콩의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이양되었다. 이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1898년 영국이 지금의 홍콩 영역을 확정하고 소유(?)한 이후로 99년이 지난 시점의 일이었다.
1997년 영국의 홍콩 반환은 정당한 일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홍콩인에게는 환영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자유주의 체제에서 사회주의 체제로 편입되는 것을 반기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천안문 사태를 통해 무자비한 중국의 맨얼굴을 지켜봤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러한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덩샤오핑은 일국양제를 묘안으로 제시한다.
일국양제는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 안에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조건부 공존하도록 하는 특수한 정치제도이다.
중국 본토는 사회주의 체제이지만 홍콩은 특별하게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로인해 홍콩과 마카오는 중국에 이양된 후에도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못했다.
일국양제 체제는 홍콩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듯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홍콩의 지도자라고 볼 수 있는 행정장관을 직접 선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홍콩 기본법 제45조>에 따라 홍콩 행정장관은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로 선출한다.
이는 친중파 행정장관이 홍콩을 지배하게 만들었다. 중국은 홍콩에서 일국양제를 서서히 걷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학민사조의 등장과 우산혁명의 시작
여기에 중국은 홍콩의 다음 세대도 공략한다. 국민교육 과목을 교육과정에 편입시키고자 한 것이 그것이다.
국민교육 과목은 중국 공산당에 대한 찬양의 내용이 담긴 고등학교 교과였다.
다시말해 중국 공산당을 찬양해야 우등생이 될 수 있는 교육과정이 등장한 것이다.
이에 처음 반대의 목소리를 낸건 조슈아 웡이라는 17세 소년이었다. 조슈아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학민사조라는 학생단체를 설립하였고, 당시 행정장관이었던 렁춘잉에게 이 교과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렁춘잉은 조슈아 웡의 문제제기를 어린 소년의 치기어린 반항 정도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조슈아 웡을 필두로한 학민사조의 외침은 홍콩인을 깨어나게 했고,
우산혁명이라고 불리는 2014년 홍콩 시위가 발생했다. 혁명 이름에 우산이 붙은 이유는경찰의 최루탄을 막기 위해 시민들이 우산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조슈아의 리더십에 기반하여 학민사조는 2016년 4월, 데모시스토라는 민주정당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조슈아와 함께 우산혁명을 이끌었던 네이선 로가 입법회 의원으로 당선되는 쾌거를 이뤄낸다.
축배를 들 수 없는 무늬만 직선제의 함정
홍콩의 민주화 열풍에 힘입어여기서 그토록 열망하던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선출이 2017년에 이르러 도입이 추진되었다.
우산혁명은 승리한 듯했다. 하지만 기뻐할 수 없었다. 이는 일종의 눈속임이었다. 홍콩에서 실시하고자 했던 행정장관 직선제는 큰 문제가 있었다.
간선제를 통해 3명의 후보자를 선발한 후 직선제를 통해 최종 1인을 선출하는 제도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는 사실은 무의미한 직선제였는데, 간선제를 통해 선발하는 3명의 후보자가 모두 친중파라면.. 사실상 홍콩인의 선택권은 없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다. 형식만 갖춘 무늬만 직선제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에 홍콩은 다시 분노했다.
여기에 정치범의 중국송환이 우려되는 법안 <홍콩 범죄인 인도법>은 또 한번의 우산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것이 홍콩의 기나긴 싸움이 시작된 배경이다
홍콩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피 흘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상대가 너무나도 강하다. 강력한 힘을 가진 중국 그리고 시진핑을 상대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중국은 결코 쉽게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오히려 홍콩을 압박하는 카드를 연이어 꺼내고 있다. 홍콩과 단교를 선언하는 일명 ‘단교 도미노’만 보아도 홍콩을 압박하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그들이 상대하는 대상이 비상식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전세계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를 막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 정부는 홍콩사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외면은 중국이 우리에게도 너무 강력한 존재이며, 외교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시민의 힘으로 ..
그렇기에 더욱 나서야하는 것은 시민이고 개인이다. 우리는 80년대 신군부세력에 맞서 6월의 승리를 얻어냈고, 다시 부활한 권위주의의 어둠도 평화의 촛불로 물리쳤다. 홍콩도 그 지점에서 우리와의 공통분모를 찾는다. 하지만 홍콩에 대한 관심이 없어보이는 우리의 현실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다.
물론 우리가 그들을 위해 싸워야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독히 고독한 홍콩에게 적어도 같은 아픔을 겪은 우리 시민들은 희망의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을까?
아득한 어둠의 길을 걷고 있을 홍콩에게 당신들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과거에서 자신의 미래를 바라보는 그들에게 관심 가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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