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발표된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대한민국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다.
많은 여성들이 82년생 김지영의 삶에 공감하였고 여성인권에 대한 화두를 제시하였다.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도 그 어느때보다 높아졌다.
그런데 많은 여성들의 공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어떤 이들에겐 문제작으로 분류되었다. 이 소설을 읽었다고 고백하거나 들고있는 사진 한 장 만으로도 돌팔매질을 당한 여성 연예인까지 있었다.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향한 날선 비난은 남성에게서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남성이 여성의 적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억압하는 인물은 모두 남성으로 만들어져있다. 소설 속 남성 캐릭터 중 입체적인 캐릭터는 단 한명도 없다. 이 소설 속에서 남성은 매우 단편적이며 단순하게 여성을 혐오하고 억압하는 철저한 가해자로만 그려져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독자들의 남성에 대한 인식을 일반화 시키는 장치가 되었고 젠더갈등의 촉매제가 되어버렸다.
물론 엄밀히 따져본다면 여성의 억압된 삶에 남성의 지분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이 일부가 아니고 전체로 치환되는 것은 안타깝다. 소설 속 김지영의 일화들은 수많은 여성들이 단편적으로 겪었던 일화들이 한 여성의 삶으로 결합 되어있다. 이로인해 많은 여성들이 82년생 김지영의 삶과 자신의 삶의 교점을 찾아낼 수 있기도 했지만 모든 여성의 삶이 전적으로 김지영의 삶으로 일반화 될 수 있는지는 분명 의문이 들 수 있다.
이러한 지적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바라보는 문학평론가들의 시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신샛별 문화평론가는 소설에 대해 호평과 함께 “여성의 삶을 표준화하여 균질 적인 것으로 만들어 제시하는 거대서사의 논리를 따를 때, 개별 여성의 경험이 지닌 고유성은 훼손되거나 소외되기 십상이다.”라며 소설 82년 김지영의 과한 일반화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책 중간중간 통계 자료들이 삽입되어 여성 차별 현상이 우리 사회에 실재하고 있음을 나타내는데 이 통계들은 곡해된 해석을 유도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평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우리 사회에 여성이 공감할 수 있는 소설임은 분명했지만 그 표현 방식에 있어 아쉬움에 대한 평이 많았다. 전성욱 교수의 날 선 비판처럼 이 소설은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 그리고 소외 등의 복합적인 문제를 극히 단순한 통념으로 일반화했다. 또한 이것이 남성과 여성의 대립 구도를 극도로 증폭시켰다. 소설 속에서 그려진 남성의 모습이 우리 사회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라고 한다손치더라도 그 남성들의 표현 방식은 변화의 대상이기 보다 단순한 악에 불과했다. 이것이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공감과 설득의 의도가 없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게 만드는 요인이 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가치있고 의미 있다. 표현방식이 서툴다 하더라도 메세지만큼은 분명했으며 우리 사회에서 고민해야하는 화두를 던져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회 변화는 한 쪽 성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는 없다. 문제의 원인이 반대쪽 성에도 있다면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문제 제기에는 성공했지만 모든 대중을 설득하는 것에는 아쉬움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82년생 김지영은 달랐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우려 속에서 출발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으로 촉발된 성별 대립이 더욱 크게 퍼져나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그것이었다. 물론 단순하게 페미니즘 성향의 소설을 영화화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인 돌팔매질을 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았다면 분명 그들의 예상과는 다른 이야기였으리라 생각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소설이 주는 의미있는 메세지를 간직하면서도 그 공감대를 여성에게만 국한시키지 않으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이 영화를 연출한 김도영 감독은 “영화 속 누구든 ‘악당’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덕분에 영화는 갈등보다는 공감에 초점이 맞춰진 느낌이 들었다. 소설과 달리 이 영화에서 남성은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단편적인 악당이 아니다. 김지영(정유미)의 남편 대현(공유)가 그랬듯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변화해나가는 남성도 있다. 또한 김지영의 아버지와 남동생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여성을 혐오하는 가해자가 아니라 얽힌 실타래를 풀어나가려고 노력하는 또는 변화할 수 있는 대상으로 그려져있다. 원작에서는 없었던 크림빵과 만년필이라는 소재가 이를 가능하게 했다. 또한 남성의 육아휴직에 대한 접근도 그렇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누구든 빌런이 되어서는 안되며 이야기 속의 모든 인물들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는 감독의 의도가 영화 속에 무척 잘 표현되어있다.
다시 말해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한 여자의 삶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나의 삶, 내 배우자의 삶, 우리 가족의 삶으로 공감의 반경을 확장시킨 작품이 되었다고 보여진다.
아직 보지 않은 이 영화가 불편했다면..
개인적으로 개봉한지 1년이나 지난 이 영화가 여전히 배척당하는데 안타까움이 있다.
만약 이 영화를 젠더갈등의 근원이라 오해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젠더갈등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공감을 기반으로 한 나와 내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또한 이 영화는 이러한 얽혀버린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과정에 있어 당신을 배제하지 않는다.
원작자 조남주 작가의 말처럼 이 영화는 “소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이야기”다.
영화 속 김지영의 손은 당신을 손가락질 하는데 쓰이지 않았으며 당신을 향해 손 내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준다면 좋겠다.
변화는 필요하며 또 가능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우리가 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 이 포스팅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하나의 부분적 관점으로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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