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마스터피스] 8월의 크리스마스를 지나 봄날은 간다

맥주와 팝콘-Movie

by 다락방지기 2017. 2. 26. 22:01

본문

8월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를 지나 봄날은 간다

  한국의 멜로영화를 논하면서 허진호 감독을 빼놓을 수 있을까?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는 특별할 것 없는 진부한 소재를 연출력으로 승화시킨 허진호의 수작이다. 이번 포스팅에선 닮은 듯하면서도 다르고 다른 듯하면서도 닮은 두 영화를 비교해보고자 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

  한석규와 심은하가 주연한 <8월의 크리스마스>는 불치병에 걸린 정원이 죽음을 향해가는 과정에서 나눈 다림과의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시놉 자체만보면 신파극으로 흘러갈 것 같아 보이는 진부한 소재로 보이지만 실제 영화를 보면 매우 정제되어 있고 담담하게 죽음의 과정을 그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한석규의 연기도 일품이지만 심은하의 전성기 시절이 담겨있는 필름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가 큰 영화이다.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를 통해 허진호 감독은 상업적 성공은 물론 평단에게도 큰 호평을 받는 기대주로 성장하게 된다. 덕분에 이영애와 유지태가 주연을 맡은 차기작 <봄날은 간다>는 전작보다 더욱 안정적인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게 되었다. 전작의 성공 덕에 허진호를 눈여겨 본 일본의 투자사가 투자를 결정하며 한일합작으로 제작되었다. (그러고보면 잔잔하면서도 차분한게 일본영화와 느낌적으로 유사하다) 덕분에 <8월의 크리스마스>에 버금가는 영상미는 물론 오디오 완성도 역시 높아진다. 주제곡 또한 일본 뮤지션 마츠토야 유미가 참여하여 완성되었다. 물론 노랫말은 김윤아가 담당했다.



한없이 넓은 가슴을 가진 정원(한석규), 청춘을 살고 있는 소년 상우(유지태)

  <8월의 크리스마스>의 정원(한석규)은 30대로 접어든 나이도 있지만 굉장히 생각이 깊고 진중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이로인해 죽음을 앞둔 상황 앞에서도 결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그런 자신을 사랑하는 다림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위해 그녀의 마음을 모른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희대의 어장관리남 캐릭터로 비춰질 수는 여지는 있다)

  반면 <봄날은 간다>의 상우(유지태)는 정원과 정반대의 캐릭터이다. 젊은 나이에 어울리게 무모하기도 하고 저돌적이다. 또한 매우 감정적이기도 하다. 쉽게 화내고 토라지고 자존심 상해 하는 상우의 모습은 영락없는 소년의 모습이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할거냐는 은수의 물음에 자존심이 상해 버럭 화를 낸다. 그리고 다툰 후 집에와서 자신의 짐을 챙겨 놓은 은수를 달래려고 하지 않고 집으로 가버리는 소인배의 모습을 보인다.

  반면 정원은 다림에게 쌀쌀 맞게 대한 자신의 모습에 미안함을 느껴 다림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며 사과한다. 별거 아니라고 느낄 수 있는 세심한 부분까지 챙기고 배려하는 정원의 모습이 잘 드러난 장면이었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담다, 심은하 그리고 이영애

남자배우들이 캐릭터의 차이가 극명해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면 두 영화의 여배우에게는 공통점이 흥미롭다. 두 영화는 각각 심은하와 이영애의 대표작으로 대중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심은하의 밝게 웃는 사진과 함께 빨간 목도리를 한 이영애의 이미지는 많은 이들에게 첫사랑을 떠올리는 매개가 되었고 오랜 시간 여운을 주는 모습이 되기도 했다.





할머니

<8월의 크리스마스>에선 영정사진을 찍는 할머니가 <봄날은 간다>에선 치매에 걸린 상우의 할머니가 굉장히 중요한 의미로 등장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에 하나이기도 한 영정사진의 촬영 장면. 정원이 운영하는 사진관에 가족들이 찾아와 가족사진을 찍는다. 이윽고 아들로 보이는 남자가 정원에게 다가와 영정사진으로 쓸거라며 할머니의 독사진 촬영을 부탁한다. 하지만 할머니의 표정은 밝지 않다. 하지만 정원은 성심성의껏 촬영을 한다. 그날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할머니가 사진관을 찾는다. 그리고 낮에 찍은 사진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다시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제삿상에 올릴 사진이니 예쁘게 찍어달라고 웃으며 부탁한다. 정원은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찍으며 죽음을 앞둔 이의 초연함을 느끼고 그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많은 감정을 느낀다. 이후 자신도 영정사진이 될 독사진을 밝게 웃으며 찍는다. 여담으로 할머니의 영정사진은 실제로 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 영정사진으로 쓰였다고 한다.


<봄날은 간다>의 상우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젊은 시절 자신을 사랑한 남편을 그리워 하며 살아간다. 자신을 사랑했다고 하지만 다른 여자와 사랑을 나눈 사실을 알게된 충격의 순간이 할머니를 계속 맴돌고 있다. 이후 상우가 은수와의 이별로 괴로워할때 할머니는 상우와 함께 기차역에 앉아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린다. 그러다 "떠나간 버스와 여자는 잡는게 아니란다"라는 말을 남기며 상우의 흔들리는 감정을 잠재우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두 작품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모두 남자주인공들의 내면에 큰 영향과 변화를 주는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순간을 담는 소재 사진 그리고 소리

<8월의 크리스마스>는 사진을 통해 정원의 내면을 표현한다. 영화 전반부 자신의 첫사랑이 걸려있는 초원사진관부터 마지막 다림의 사진이 걸린 것까지 정원의 가슴 속에 담겨있는 사랑을 사진이란 소재로 표현해낸다.


<봄날은 간다>는 소리가 사진의 역할을 대신한다. 사운드 엔지니어인 상우는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기 위해 은수와 녹음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여기서의 녹음된 소리들이 상우의 가슴 속에 은수와의 추억으로 자리하게 된다. 눈오는날 저벅저벅 걸어들어오는 은수의 발걸음 소리부터 시냇물 소리와 함께 부르는 은수의 콧노래, 바람 속에서 사라져가는 은수의 흔적까지 상우는 소리로 자신의 사랑을 담아내고 묻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미완성이라 아름다운 사랑 <8월의 크리스마스>

  다림은 정원이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정원에게 다가가고 대시한다. 정원은 다림을 매몰차게 쳐내기보다 따뜻하게 감싸주고 그녀의 얘기를 하나하나 들어준다. 정원도 다림을 사랑했음은 마지막 초원사진관에 걸린 다림의 사진으로도 알 수 있지만 중간중간 살고자 하는 의지를 내비치는 정원의 모습으로도 발견할 수 있다. 병원에서 맛도 없는 병원밥을 꾸역꾸역 넘기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정원은 살고 싶었고 그 이유가 다림이었다는 것. 덕분에 둘의 사랑은 미완성으로 끝나지만 아름다울 수 있었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사진을 발견한 다림이 밝게 웃는 모습은 다림이 성장했음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소녀에서 숙녀로 성장해내는데 정원의 배려와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한국판 500일의 썸머,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의 개봉시기가 훨씬 빠르니 <500일의 썸머가 미국판 <봄날은 간다>인게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여하튼 두 영화는 매우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처음 이 영화를 봤을때와 시간이 흘러 이 영화를 봤을때 감정이 매우 다르게 느껴진다. <봄날은 간다>의 상우는 <500일의 썸머>의 톰과 같다. 어리고 철없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저돌적인 남자이다. 하지만 자존심이 세고 지는 것을 싫어해 작은 다툼에도 크게 상처받고 토라지는 전형적인 어린 남자다. 덕분에 처음 영화를 본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외치는 상우를 동정하게 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은수의 답답함에 더 마음이 기울게 된다. 


  사실 상우는 은수를 사랑한다. 하지만 은수를 위해 배려하거나 기다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결혼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이혼녀 은수는 사랑이 조심스럽다. 그래서 "라면 먹고 갈래"하며 상우를 집으로 불러들이지만 몸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또한 불투명한 미래의 상우를 보며 많은 갈등을 거듭한다. 하지만 은수는 분명 상우가 손내밀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상우는 그런 은수의 고민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 방식의 사랑만을 요구한다. 



냉각기를 갖기로한 은수가 집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고민하는 장면이 있다. 사실 그것은 상우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고민에 대한 기다림없이 상우는 은수에게 전화를 걸고 술에 취해 집에 들이닥친다. 결국 은수는 상우를 밀어낸다. 그리고 상우는 그것이 모두 은수의 탓이라 여긴다. 사실 밀어내는 모든 순간의 다툼을 보면 은수는 상우에게 여지를 주려고 한다. 하지만 상우는 흥분해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관계의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결국 늘 은수가 상우에게 양보하며 사과하며 관계가 회복되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은수를 향해 쌍욕을 시전한 마지막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은수가 아무렇지 않은듯 상우를 찾아온 것은 단순히 상우의 마음을 뒤흔들어놓기 위해서가 아니다. 은수는 스스로의 고민을 그제서야 마쳤고 상우를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역시 상우는 자신의 길을 가기로 한다. 함께 길을 걷는 장면에서 빠른 걸음으로 걷는 상우로 인해 곤란해하는 은수의 모습이 둘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보여진다. 상우는 상대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의 걸음으로 걸었고 그로인해 은수는 힘이 들었던 것. 이렇듯 <봄날은 간다>는 서로의 시각차이에 따른 사랑의 말로를 보여준다.


허진호 감독이 선사한 롱테이크의 미학

  롱테이크는 화면을 끉지 않고 공간 전환을 하지 않는 기법이다. 배우들에게는 동선에 대한 정확한 숙지와 함께 배우간 호흡도 중요해 어려움이 따른다. 관객 입장에서는 길게 이어지는 한 장면이 자칫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상업영화에서는 롱테이크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허진호 감독은 두 영화에서 롱테이크를 매우 적절하게 사용해 지루함보다 인물들의 감정선을 읽어내는 장치로 활용해낸다. 덕분에 관객은 지루함을 느낀다기보다 오히려 장면의 여운을 얻게 된다. 


8월의 크리스마스 명장면




봄날은 간다 명장면



 

관련글 더보기